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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책

'그해, 여름 손님', 안드레 애치먼




그해, 여름 손님
국내도서
저자 : 안드레 애치먼(Andre Aciman) / 정지현역
출판 : 도서출판 잔 201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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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팅 어워드 수상자 안드레 애치먼의 작품으로, 원서는 출간된 지 어느 덧 10년이 넘었습니다.


이 작품은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낯선 동성애를 다루는 작품으로 주제를 떠나서 섬세한 표현과 뛰어난 정신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많은 타이틀을 얻기도 했는데요.


먼저, '뉴욕 타임즈'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서 주목할 만한 책으로 선정했고, '위싱턴 포스트', '시카고 트리뷴', '시애틀 타임즈'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습니다. 그리고 20th 람다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죠.


동성애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이 책에 대해서 주목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함께 살펴보시죠.







시대가 변해도 아직은 낯선 동성애


배경은 지중해가 펼쳐진 이탈리아로, 열일곱 소녀 엘리오가 손님으로 찾아온 스물넷의 철학교수 올리버에게 남다른 감정을 느낍니다.


이 때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작품이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않고 읽으면 삼분의 이 가량의 분량을 읽을 때까지도 그 어떠한 거부감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3인칭의 시점이 아닌 엘리오 1인칭 시점으로 소설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올리버가 남성이라는 점은 인지할 수 있지만, 엘리오의 성별을 인지하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는 문체 자체가 노골적이지 않고 섬세하며 여느 사랑 표현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로맨스 소설과 같이 느껴지죠.


물론 다음과 같은 구절을 통해 우리는 동성애를 쉽게 인지할 수 있습니다.



‘우정’이라는 낱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사전에서 정의하는 우정은 생경하고 침잠 상태의 것이라 관심이 없었다. 그가 택시를 내린 순간부터 로마에서 작별 인사를 할 때까지 내가 원한 건 어쩌면 모든 인간이 서로에게 원하는 것,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에게서 먼저 나와야만 했다. 그래야 이어서 내게서도 나올 수 있었다. -p. 41




그러나 표현을 살펴보면 노골적이기 보다 의식적 영역에 더 집중한 표현들입니다. 이런 표현들은 섬세하고 우리에게도 생각하게 하는 부분들이 많죠. 그나마 노골적인 표현이라면 다음과 같은 표현쯤 되겠네요.



그의 팔은 나를 쓰다듬지도 않았고 꽉 껴안지도 않았다. 이 순간에 내가 가장 원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동료애였다. 그를 껴안은 채로 힘을 조금 풀고 두 팔 모두 그의 헐렁한 셔츠 안으로 가져가서 다시 꼭 안았다. 그의 살에 닿고 싶었다. -p.164



그러나 이 표현마저도 신체접촉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 묻어납니다. 표현 또한 직접적이지 않죠. 무엇을 원하는 지 돌려서 이야기합니다. 비록 동성애를 다루는 작품이긴 하지만, 아니 더욱이 동성애를 다루는 작품이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모두에게 거부감 없이 표현할 수 있는가에 집중해서 읽어보는 것도 좋은 책읽기가 될 것 같습니다.




'클래식'이라는 매개체


주인공 엘리오는 주로 피아노로 연주하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여기서 피아노 연주는 매우 중요한 매개체입니다. 이 소설이 그저 동성애만 다루는 작품이 아님을 보여주는 가장 큰 장치이죠.




당신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연주할게요,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내 손가락이 벗겨질 때까지. 난 당신을 위해 뭔가 해 주는 게 좋고 당신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테니까 말만 해요.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았어요. 친근하게 다가가는 나에게 또다시 얼음처럼 차갑게 반응할 때조차. 우리 사이에 이런 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 여름을 눈보라 속으로 가져가는 쉬운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절대로 잊지 못할 거예요. -p. 20



이 처럼 이 책은 시도 때도 없이 클래식 음악을 연출합니다. 이를 통해 엘리오와 올리버가 연결되고 그저 신체적 접촉이 아니라 정신적 교류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이든, 리스트, 바흐, 헤라클레이토스, 레오파르디를 넘나들면서 두 사람의 의식 세계가 연결되고 하나 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름'이라는 시간


책이름처럼 올리버는 그저 엘리오 아버지의 원고 수정을 도아 주러 온 여름 손님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두 사람의 시간적 한계가 생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내던진 그해 여름의 몇 주 동안 우리의 삶은 거의 닿지 않았지만 우리는 강 건너편으로 건너갔다. 시간이 멈추고 하늘이 땅에 닿아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 것이던 신성한 걸 내어 주는 그곳으로. 우리는 반대편을 보았다.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알고 있었다. 지금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확인되었을 뿐. 우리는 한때 별을 찾았다. 나와 당신. 일생에 한 번만 주어지는 일이다. -p. 300




동성애, 가정 등의 이유로 올리버는 엘리오에게 항상 "나중에"라고 말하곤 하는데요. 아마 시간적 한계도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시간적 한계를 극복하고 몸과 몸의 관계를 넘어 정신 영역까지 공유하기에 이르죠. 때문에 시간적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또한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